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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청소년을 위한 서양 철학사>를 읽고 개인적인 정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보다 정확한 자료 및 원본을 참고 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아래 참고자료를 참고해주세요. ※
헬레니즘, 로마시대의 철학이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스무 살에 왕위에 올라 그리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의 연합군을 격파했으며, 시리아와 이집트를 점령했다. 동쪽 인도까지 쳐들어갔으나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빌론에서 사망했는데, 이때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기 1년 전인 기원전 323년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이후로 그리스 문화에 동양적 요소들이 흘러들어 왔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없었던 아주 독특한 세계주의적 인류 문화로 변모해 갔다. 이때의 문화를 두고 19세기 독일 역사학자인 드로이젠은 헬레니즘이라 불렀다. 고대 철학의 제3기에 해당하는 이때를 가리켜 ‘헬레니즘 - 로마 시대의 철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구체적인 시기를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기원전 322년부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아카데메이아가 폐쇄된 기원후 529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때에는 어떤 철학이 발달했을까? 철학은 항상 그 시대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이어서, 가령 이때에는 알렉산드로스와 그 후계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전쟁이 이어졌기 떄문에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자연히 혼라스러운 밖의 세계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구원과 행복을 얻으려고 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 역시 정치적 자유를 잃고 있던 터라 국가 사회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내면 세계로 가라앉아 자기의 안심입명 만을 구했다. 그래서 철학이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으로 항정되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개인의 처세를 둘러싼 윤리학적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또한 이 시대의 후반부에 들어와서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신음하던 여러 민족들이 세상의 허무함과 인간의 무력감을 느끼고 초인간적인 신에게서 구원을 얻으려고 했다. 이때부터 많은 종교 사상들이 여기저기에서 어지럽게 나타나게 되었는데, 예수가 등장한 이후 기독교에 의해 비로소 종교 분야가 통일에 이르게 된다.
금욕주의, 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의 창시자는 키티움 출신의 제논이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사실 그는 우연히 철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한 장사꾼에 속했던 그가 어느 날 배가 침몰하면서 많은 재산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크게 낙심하여 아테네 거리를 하릴없이 떠돌다가 발길이 닿는 대로 한 책방에 들렀는데, 거기서 무심코 한 권의 철학책을 발견했다. 그는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평생 철학에 전념하게 되었으며, 그 후 “배의 침몰이 나에게는 매우 유익한 사건이었다”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토아라는 이름은 어떻게 얻게 되었을까? 본래 이 말은 ‘얼룩덜룩하게 색이 칠해진 복도(Stoa poikile)’라는 말에서 유래하며, 제논과 그의 젊은 제자들이 바로 이곳에 모여 학문을 논했다. 둥근 기둥들이 죽 늘어선 서양식 복도를 상상해 보자. 의무를 준수하고 절제하고 극기하는 의지의 사나이 제논이 이 엄격하고 진지한 건축물의 보호를 받았다는 상징성이 ‘스토아’라는 말 속에 있으며, 이것은 쾌락의 사도 에피쿠로스가 포근하고 따사로운 정원의 뜰 안에 머물렀던 것과 대조된다.
금욕주의, 스토아학파_이성에 따르는 삶, 형이상학
스토아학파는 이 세계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었을까? 일단 그들은 모든 근본을 물질로 보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취했다. 인간의 육체나 영혼 그리고 신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마주치는 사물의 성질이나 인간의 덕과 정욕마저도 물체라는 것이다. 또한 헤라클레이토스와 마찬가지로, 만물의 근본원소를 불로 봤다. 신으로서 불은 또한 정신이기 때문에, 이 우주(Cosmos)는 이성적인 것이 되어 서로 질서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 우주에 질서가 있는 것은 그 안에 로고스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규칙적으로 돌고 또 달이 지구의 주위를 정확하게 도는 것, 별들이 각각 자기의 위치를 기키며 우주 전체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 등은 어떤 법칙(원리)이 그 가운데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에도 로고스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절제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켜 나간다. 로고스가 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라면, 이성은 인간을 지배하는 법칙이어야 한다. 우주가 로고스에 따를 때 질서를 이루는 것처럼, 인간은 이성에 따를 때 절도 있는 행동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성에 충실한 생활을 할 때, 그것이 바로 자연(순리)에 순응하는 삶이 된다. 여기에서 “자연(이성)에 순응하여 살라”라고 하는 스토아학파의 모토가 나오게 된다.
금욕주의, 스토아학파_금욕주의, 윤리학
스토아학파의 윤리학을 우리는 보통 금욕주의라고 부른다. 이들은 참된 행복이 쾌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를 잘 준수하고 자칫 감정에 사로잡히기 쉬운 자실을 이겨내며 욕정을 단념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대로 인간의 본성은 이성이기 때문에 그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이 덕이며,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쾌락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라고 하는 쾌락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떨까? 만인 그 말대로 인간이 쾌락만을 따른다고 하면, 어린이는 평생 걸음걸이를 배우지 못하고 말 것이다. 걸으려다가 넘어져서 화가 나고 아파서 고통스러운데 누가 힘들게 걸음을 배우려 할 것인가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어린이는 걸음 배우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그 일을 해내고야 만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단순한 쾌락이나 충동이 아니라는 것을 중명해 준다. 다시 말해 삶에 길을 제시해 주는 어떤 법칙, 즉 자연과 세계를 지배하는 객관적인 이법(理法)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이 덕이라고 하는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덕과 부덕을 구별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에 있다기보다 그 사람의 정신적 태도에 달려 있다. 누군가 “인간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건강, 재산, 생명, 명예, 권력, 병, 가난 등에 대해 그 자체로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 말할 수 없다. 가령 돈이 많은 어떤 사람이 선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악하다고 할 수도 없다. 오래 사는 것이 바람직스러울지는 모르지만, 그자체가 선이나 악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러한 것들은 선악이 구별되지 않는 ‘중립적인 것’에 불과하다. 현자가 진실로 추구해야 할 것은 어떤 특정한 사물이 아니라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지를 아는 지혜다. 그것은 마치 훈련을 하는 사수의 목적이 과녁 자체가 아니라, 사수 자신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행위에 대해 도덕적 가치를 내리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그 결과가 아니라, 과연 바른 행위를 하고자 하는 의무 의식과 내면적인 심정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중립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데도 크든 작든 그러한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가령 건강이 나빠지는데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가난에 허덕이는데 가난으로부터 초연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여 가난과 질병을 늘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현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러한 것들에 완전히 무관심하려면 꾸준히 수양을 쌓아야 하는데, 이는 오직 수양을 통해서만 외부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apatheia)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되부 사건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면서 또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 그래서 스토아학자들은 아파테이아를 유지하는 현자야말로 진실로 행복하고, 자유롭고, 부유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부동심이란 그저 소극적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그야말로 저돌적인 정념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형편을 잘 아는 스토아학자들은 이 부동심을 얻기 위해 생사(生死)까지도 가볍게 봤으며, 심지어 숨을 멈추거나 스스로 자살을 택한 사람도 많았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중립적인 것’에 지배되면서 매일매일 삶 속에 허우적거리기보다는 용감하게 목숨을 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금욕주의, 스토아학파_제자의 손에 죽다
제논과 클라안테스도 자살했다. 특히 클레안테스는 의지가 강해서 스스로 굶어 죽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철학자들 가운데 자살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후기 스토아학자인 세네카는 그 제자인 네로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후기의 스토아학자로는 이외에 노예 출신의 에픽테로스와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가 있다. 오현제의 한 사람으로서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고 중국의 후한과도 외교를 맺었던 아우렐리우스는 비록 황제였지만, 사치와 안락을 누리지 않았고 전쟁터에서도 평범한 군복을 입으며 병사와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스토아학자들은 엄격한 금욕주의에 따라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적인 덕, 즉 부동심을 얻는 데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때로는 무서울 만큼 강한 인내력과 자제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금욕주의, 스토아학파_제자의 손에 죽다
첫째, 스토아학파는 모든 인간이 똑같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서 세계주의로 나아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성을 갖는다는 보편성에 입각해서 개인과 개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국가적 제한이나 민족적 편견을 부수고 전 인류의 공통적인 정신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들의 세계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로마 제국의 정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는 선민 사상에 따라 배타적이기만 했던 유대교를 개방적인 기독교로 발전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스토아 사상과 기독교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엄격한 금욕주의적 윤리를 예찬한 점이나 재물(돈)을 가볍게 본 점, 그리고 민족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 모든 인간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 등이다. 둘째, 이와 같은 맥락에서 모든 개인은 이성적 존재이면서 전체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서로 친척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셋째, 스토아학파는 자연볍(自然法) 사상을 불러일으켰다. 자연법이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자유, 평등, 생명권 등 어느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지켜져야 하는 영원한 법이다. 마지막으로, 스토아학파는 철학이란 머리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직접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자료 및 원본 : 네이버 지식백과, 강성률
-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 https://terms.naver.com/list.naver?cid=41908&categoryId=58133&so=st4.a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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