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이야기/IT
나의 취업 이야기 및 팁 (비전공자 문과생의 IT 개발자 취업 후기) (국비학원 출신)
Ben의 질서세우기
2024. 4. 2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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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안녕하세요. 이 글을 누군가 보고 계신다면, 아마 취업을 준비하시거나,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고 계신 분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취업했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가장 취업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그런 사소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팁을 전달해보고자 이 글을 작성해봅니다.
정보 전달을 위한 글을 자주 적지 않다 보니, 글이 읽기에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대학시절 이야기 + 내가 개발자가 하고 싶었던 이유
외고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문과 어느 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수능 성적에 맞추어서 간 학교였기 때문에, 나의 적성을 깊게 고민하지 않고 대학을 갔고 그 결과는 어느 문과생과 비슷하게 학과 수업에 큰 흥미를 갖기 어려웠다. 학점도 절대 높지 않았다. 4.5 만점으로 환산하면 3.3 정도?
학생회, 동아리,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대학생활을 즐겼던 것 같다. 정말 순수하게 즐겼다. 미래 취업 준비는 생각도 안하고 그냥 형들이랑 피시방 가고 술 마시면서 보냈던 것 같다.
군 입대를 앞두고, 카투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엄청 조건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토익 점수만 있으면 된다하여, 시험보고 지원을 해보았다. 너무 운이 좋게도 카투사에 추첨되어서 3학년 1학기 까지 학교를 다니고 군입대를 하게 된다.
카투사 군복무를 하게 되면 출퇴근을 하게 된다. 미군은 출퇴근 제도이기 때문에 그런데, 퇴근 후에는 자유시간이었다. 당연히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때 처음으로 취업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책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정리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군대에 다녀온 것은 정신적으로 많은 성장을 하게 된 계기였다. 그 당시 취업을 걱정하며 뭐라도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지쳐 뭔가 해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학 시절 어떤 선배가 엑셀을 잘 다루는 모습을 떠올려 엑셀을 공부해보리라 다짐했다.
엑셀을 공부하다가 정말 우연치않게 Visual Basic 이라는 것을 이용하면 엑셀의 함수 기능을 내가 원하는 입맛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신이 났었던 기억이 있다. '우와, 내가 필요한 것을 내가 직접 만들어서 활용하다니. 이거 잘만 활용하면 나중에 회사가면 너무 유용하겠다' 이랬던 것 같다. Visual Basic 이 나의 첫 프로그래밍 언어였고, 프로그래밍 경험이었다.
Visual Basic 을 공부한 것은 그저 막연한 취업 고민 때문이었는데, 공부하면서 계속해서 너무 즐거웠다. 왜 즐거워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계속 남는 시간에 공부하면서 이것 저것 만들어보던 기억이 난다.
군 제대를 하고, 학교에 돌아가니 나는 3학년 2학기 였다. 학점은 처참했고, 굉장히 불안해졌다. 사실 개발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때까지도 전혀 없었다.
학교에 돌아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하기 싫은 학과 공부라도 열심히 해서, 학점을 굉장히 잘 받았고, 그 학기 교수님이 나를 감사하게도 예쁘게 봐주셔서, 다음 학기에 학과 관련 협회에서 일할 수 있는 면접 제안을 주셨다. 그렇게 인턴생활을 4학년 1학기로 그해 1월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학과에서 전공을 배운 것이 토대인 산업에서 일하는 것인데도, 새로 배워하는 것이 100%에 가까웠다. 무척이나 괴로웠다. 돈과 시간을 쓴 학과 공부가 현실에서는 너무나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협회에서 일하면서 이 산업이 정말 나랑 안 맞다고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경력이 있으신 분들과 내가 일하는 모습을 우연히 비교를 해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직이긴 하나, 단순 반복과 기술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사무직이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우울했고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학창시절 매일매일 공부하면서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은데, 이런 회사 생활을 30년 더 할 자신이 없었고, 행복해질 자신이 없었다.
그때 진지하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Visual Basic 을 공부했었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이 내가 성인되고 난 이후 스스로 뭔가 공부한 것이었고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개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다른 회사의 사무직을 원했던 것 같다.
협회 인턴기간이 끝나고 마지막 4-2 학기를 마치러 학교로 돌아갔다. 마지막 학기를 지내면서 취업 준비를 해서 원서를 넣어보았다. 3개 정도 원서를 넣어보았는데, 한 곳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상당히 좋은 회사였다. 실무진 면접을 보러 갔는데, 너무 어려운 질문들이 많았다. 앞으로 금리 추세가 어떻게 변할 것 같냐든가, 우리 회사가 취급하는 산업의 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상당히 당황스럽게 면접을 마무리 했다.
당연히 탈락이었다. 그 당시 여자친구도 취업 준비를 하는 시기였는데, 같이 준비를 하면서 나는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면접을 볼 때 그 회사에 진심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결심했었던 것 같다. '나, 개발자 한 번 해볼래'
개발자 준비과정 첫 번째, '첫 국비학원'
(나의 개발자 첫 준비 시도는 사실 SAFFY 였다. 생활비도 주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면접까지 보게 되었는데,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와 관련된 경험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유하겠다.)
개발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난 이후, 유튜브에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가, 한 유료 학원을 알게 되었다. 수업료는 상당했었다. 600만원 선입금을 하고, 추후 월에 70이었나, 계속 납입을 해야 하는 그런 학원이었다. 아버지에게 수업료를 지원해달라 요청했는데, 아버지가 거절하셨다. 이유는 아버지도 그럴 여유가 많은 편도 아니었거니와 굳이 무료 국비 수업이 있는데, 왜 돈을 쓰냐는 것이었다. 친척의 아는 사람 중 개발자가 있으셔서 얘기를 잠깐 해보게 되었는데, 무료 국비를 먼저 들어보시는 것도 괜찮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의 생각은 확고해지셨다. 이 선택은 결국 좋은 선택이 되긴 했지만, 그 당시 나는 너무나 슬펐다. 유튜브와 커뮤니티를 보면 국비학원에 대한 온갖 비난 글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나에게 이런 것들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결국 국비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개발이 어떤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데이터라는 이름에 끌렸다. 당시 쿠팡이 엄청 주목을 끌던 시기였는데, 데이터를 활용하여 비즈니스 포인트를 얻어내고, 사업에 활용한다는 것이 멋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빅데이터를 배우는 국비 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답없는 선택이었다.
학원은 강남 어딘가에 있는 학원이었다. 여기는 오프라인으로 오고 싶은 사람은 오프라인으로 활동을 하고, 온라인으로 들을 사람은 온라인에서 수업을 들어도 되는 학원이었다. 나는 비용을 줄여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강하게 되었다. 과정명은 빅데이터 활용이었지만 처음 배운 것은 웹 프런트 개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빅데이터와 아무런 관련조차 없는 개발이지만, 과정 속에 들어있었다. 간단히 HTML 과 CSS 를 활용해서 화면을 만들어보는 수업이었는데, 또 나는 너무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수많은 서비스들이 웹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직접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급하게 웹 개발자를 배우는 다른 과정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이런 내 결정을 더 불피웠던 것이, 데이터 쪽 국비 수업을 들어봤자 취업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주변 사람들과 수강생들에게 듣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데이터 수업이 시작되면서 오신 강사분의 전문성이 심히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첫 학원을 2개월 조금 덜 되게 공부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국비 학원도 무제한으로 취소하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산업 대응 어쩌구 과정으로 편입된 국비교육을 수강하게 되었다. 이건 오프라인 강의였고, 과정명은 'Java 스프링부트 웹개발자 과정' 이런 느낌의 강의명이었다.
개발자 준비과정 두 번째, '두번째 국비학원'
이 학원에서는 Java, Spring Boot, HTML, CSS, JS, MariaDB 를 배웠다. 처음 접하는 학문이고 새로운 시도이다 보니 정말 어려웠다. 정말 정말 어려웠고, 나의 코딩 습관 중 하나가 이해가 안되면 시작 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하게 되었다.
나는 고 3 당시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공부했다. 나름 외고에서 정시로 대학을 가면서 공부를 했었는데, 단언컨대 그것보다 훨씬 간절하게 공부했다. 아침 8시에 기상해서 자전거를 타고 산을 하나 건너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갔다가 오후 1시쯤 학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스터디 카페에 가서 그대로 밤 12시 ~ 새볔 1시까지 공부했다. 이 패턴을 6개월 교육 기간 내내 유지했다.
그 과정에서 참 고마운 온라인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강의들과 좋은 책들을 만났던 것에 참 감사하다. 내가 어떤 것들을 공부했는지는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아무튼, 정말 정신없는 6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파이널 프로젝트로 상품 렌탈 서비스 웹 페이지를 제작했었다. 처음치고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분명 객관적으로 현재 서비서 되고 있는 웹페이지보다 품질이 너무나 떨어져보였다. 이때 학원에 계시던 선생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무 잘만드셨다. 축하드린다.'
나는 객관적 시선이 여자친구 덕에 발달이 되어 있던 편이었는데, 우리 팀이 만든 것은 우리 학원에서 제일 훌륭했지만, 사회에서 다른 경쟁자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국비 학원은 학생 수료만 시키면 돈을 벌기에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을 알면서 속으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한 가득 안고 학원을 나오게 되었다.
나는 취업 원서를 아예 쓰지 않았다. 스스로 취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없었고, 부모님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료인 교육이 뭐가 있을지 뒤져보면서 공부를 하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추가로 붙이자면, 당시 학원에서는 원서를 안쓰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수강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학원 수강생 중 유일한 개발자 취업자는 나 혼자다.
개발자 준비과정 세 번째, '협회교육'
개발자 교육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무료'를 기준으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한 협회에서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발견했다. 무료였고 게다가 한달에 생각보다 큰 지원금을 지원해주셨다. 서울에 있었지만, 이 정도면 고시원 월세를 내고 부모님 도움 조금만 받으면 충분히 생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과정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교육생으로 선발되어 교육을 듣게 되었다. 이 선택은 내 인생의 최고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협회에 계시는 선생님은 교수님들이었다. 정말 지금 개발자로 일을 하고 있지만 정말 좋은 교육을 해주셨다. 이전 국비학원기간 공부했던 내용들을 더 깊게 더 정확하게, 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의미를 공부할 수 있었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서 정말 신나게 공부할 수 있었다.
협회 건물은 24시간 열려있었고, 나의 고시원은 바로 앞이었다. 고시원은 방이 작았지만 전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 나의 하루 대부분은 넓은 협회 강의실에서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9시 교육 시작 부터, 집에 들어가는 것은 빨라도 밤 10시 반 쯤이었다. 대부분 밤 12시까지 공부했었던 것 같다.
협회 교육 당시 나는 스스로 Java 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Java 의 정석 1, 2 권 전부를 통으로 공부해서 개발 블로그에 정리를 해두었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내가 확실히 '잘하는 것'이 생기는 경험은 추후 면접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협회에서 모델링, DB 설계, 개발부터 배포까지 모두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확히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배웠고, 파이널 프로젝트로 티케팅을 발권 서비스를 개발했다. 결과는 좋은 팀원들을 만나 다들 열심히 한 덕에 만족스러웠다.
PPT 발표를 회사 임원분들 앞에서 했다. 한 기업과 연계된 교육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발표 결과는 1주 정도 뒤에 받아보았는데, '인턴 합격'이었다.
개발자 준비 과정 네 번째, '인턴'
인턴 합격 메일을 받은 그 날이 기억난다. 집에 있었는데, 스스로 합격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면접은 잘본 것 같으면 떨어진다는 것을 믿는 나는 문을 닫고 불안을 혼자 삼키고 있었다. 인턴 합격 메일을 방 안에서 혼자 보았는데, 가족들 앞에서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합격 목록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펑펑 울었다. 27살, 만으로 25살 남자인 나는 정말 펑펑 울었다.
내가 협회 교육을 받기 전에 스스로 다짐한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단 하나의 후회도 남기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리라' 나의 20대 초반은 후회의 연속이었다. '문과오지 말걸, 예전에 사람들한테 더 잘해줄 걸, 학점 준비 잘 할 걸, 군생활 더 잘 해 볼 걸 ... 등등' 다시는 후회를 하기가 싫었고, 이 당시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책들에 많은 감명을 받은 나는 절대 후회를 남겨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아무튼, 인턴 합격의 눈물 의미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정해서,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최선을 다한 결과를 받았다'라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가 너무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너무 자랑스러웠다.
가족들에게 결과를 알려드리고 다 같이 오랜만에 맛있는 것을 먹었던 것 같다.
근무는 한 대기업의 빌딩에서 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프로젝트가 대기업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이었다. 인턴 기간 동안은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그저 타지에 방을 구해서 나가게 되었다는 점, 정규직 전환 면접 준비를 해야했다는 점 정도를 제외하고는 팀원분들도 너무 친절하시고 좋았었다.
정규직이 되고 난 이후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지금의 생활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 매일 퇴근하고 고시원 방 보다 훠얼씬 넓은 방에서 여유롭게 하고 싶은 개발 공부를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나는 매일 하고 싶은 공부하고 성장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개발자를 고민하는 분이라면 몇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사실 이것이 이 글의 핵심일진데, 너무 일기장처럼 변해버린 것 같아 죄송하다.
개발자를 고민하는 비전공자 문과생이라면...
첫 번째, 개발이 행복해야 한다. 개발자를 절대 쉽게 보지 마세요. 정말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만큼 스스로 내가 이걸 왜 하고 싶어하지? 정말 하고 싶어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았을 때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나 너무 하고 싶어'라고 하지 못한다면, 개발자로 전향은 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긴 여정이고, 생각보다 더 외롭고, 생각보다 더 지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 대학 지인 중 한 명은 저에게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개발자 전향 하지 말고 취업이나 하라고 했었으니까요. 개발자 취업 시장 정말 힘듭니다. 끝 까지 함께 하지 못한 다른 개발자 교육생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는게 정말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 올바르고 전략적인 Plan 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취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들보다 뛰어나서가 절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운이 90%였고, 여자친구의 조언들이 10%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거든요. 그저, 국비 학원 수강하고, 공부 열심히하면 취업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신다면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 했을 때, 지금 상황에 취업을 잘할 수 있는 길은 정해져 있고 한정적 입니다.
이 외에도 드리고 싶은 말들과 팁들이 더 많은데, 오늘은 여기까지 줄여야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제가 20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허무주의에 빠져 게임만 하고 계시거나, 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고 방황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책들과 유튜브를 찾아보세요. 삶의 큰 힘을 얻어가실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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